이러한 ‘저성장의 시대’에 그동안 선거 때마다 단골로 내걸렸던 ‘성장’의 구호는 사라지고,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현재의 대통령은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당선되었다. 보수주의진영이 어쩌면 시대의 변화를 가장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복지에 대한 철학과 정신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본래의 민낯을 드러내었다.
원래의 공약(公約)은 ‘선거캠페인’으로 치부되거나 공약(空約)이 되어 버렸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표현되었던 온정주의적 정책도 사라지고, 권위주의적인 ‘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복지권을 누리려는 이들을 ‘부정’으로 범죄시하고 있다. 19세기 가난한 이들을 ‘일을 하지 않는다’며 감옥으로 가두었던 영국에서의 신구빈법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음이 드러난다.
송파의 ‘세 모녀 자살사건’은 저성장 시대 한국의 사회복지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세 모녀는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 편의점 알바, 금융채무불이행자로 금융자본의 주도하에 저성장, 불안정고용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에게는 속칭 ‘사회안전망’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
사회보험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을 뿐이며, 최후의 안전망이라고 얘기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도 이들이 진입하기에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근로능력’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과 ‘근로능력’의 장벽은 ‘사회나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구성원의 안녕과 복지를 책임졌던, 앞에서 언급했던 ‘노동력’을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노동’을 강제했던 19세기 서구사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post-자본주의’가 거론되는 시대에 ‘pre-자본주의’의 시대가 오버랩되는 양상이다.
민중복지를 고민하는 포럼 사회복지와 노동이 5년이 넘는 공백 기간을 깨고 다시 펴내는 부정기간행물 <사회복지와 노동>이 돌아왔다. 이번 호에서는 대안 모색을 위한 기획 ‘복지와 노동의 만남, 역사와 이후’에서 현재 사회복지제도의 ‘일자리가 복지다’라는 ‘노동’ 중심성의 근원과 영향에서 오늘날 강화되는 개인책임 및 노동의무에 대한 계급적 성격을 분석하고 자본의 지배 헤게모니가 움직이는 모양을 짚는다. 언론이 보도하는 사회복지 관련 담론에서 (수구) 진영의 복지철학을 구체적으로 비판하며, 진보진영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기본소득론’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시각에서 사회복지의 대안은 반자본의 관점을 명확히 해야 함을 제안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3법’이라 일컬은 기초노령연금법, 장애인연금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등의 주요 문제와 쟁점, 대안에 대한 글과 좌담 내용을 실었다. 또 서울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서 600일 넘게 농성을 펴고 있는 당사자와 현장의 목소리,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에서 강력하고 주요한 수단으로 확대되는 ‘바우처’의 문제점을 담았다. 더불어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노동자와 미래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게 될 학생의 목소리도 전한다. 사회복지서비스의 ‘시장화’를 극복하고 사회복지 이용자의 권리와 함께 현장의 사회복지 노동자의 권리도 동시에 보장되어야 노동자 민중을 위한 제도와 정책으로 사회복지가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거론했다시피 지금은 ‘저성장-불안정고용의 시대’이자 ‘위기의 시대’이며 ‘전환의 시대’이다. 이 복잡다단한 시대에 노동자 민중의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적 권리를 확장하는 실천 또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도 이 사회의 정치적 입장의 오른쪽에서 왼쪽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하게 제출이 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메시아’나 ‘만병통치약’을 바라기도하고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만병통치약’이란 공상에서나 존재한다고 여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대안을 찾아가기 위해 ‘뱀의 지혜’와 ‘소같은 발걸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지혜와 발걸음’이 만날 수 있도록 <사회복지와 노동>도 앞으로 꾸준하게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다짐의 말을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