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라는 단체가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일곱 개의 종단 대표자들이 1997년 창립총회를 열고 당시 문화관광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며 활동을 시작한 단체이다.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라는 종교 박람회 같은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종교 간의 화합과 유대를 증진시키며, 각 종교의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민족사회에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고 실천해나감으로써 민족의 발전과 통일을 위한 정신적, 도덕적 토대를 구축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다.
현재는 보수기독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가 공동대표의장을 맡고 있으며 27개의 불교 종단 중 가장 큰 종단으로 사실상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무원장 자승 스님, 한국 천주교에 단 5명 뿐인 대주교 중 한 사람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 및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을 수행하며 종교간 연대에서 천주교를 공식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의 모든 행정과 인사를 총괄하는 교정원장을 맡고 있는 김주원 교무, 한국사회 가부장의 최선봉인 유교를 대표하는 성균관의 28대 최근덕 관장 , 그 유명한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중심으로 한때 30만 신도의 교세를 과시했던 한국 발생 종교 천도교의 임운길 교령, 일제하에서 사이비 종교로 몰리기도 했지만 독립운동의 한축을 담당했고 이제는 ‘14개의 민족종교’가 모인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니 사실상 한국 종교계의 모임 중 가장 크고 결속력이 있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 7대 종단의 대표들이 지난 주 ‘대한민국 종교지도자 이웃종교체험 성지순례’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등을 순례하고 바티칸의 교황청을 찾아 교황을 면담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종교 간의 상생과 평화를 위해 종교지도자들이 순차적으로 타 종교의 성지도 방문하며 다른 나라와는 달리‘종교자유의 천국’ 대한민국의 종교간 화합을 세상에 알릴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종교지도자들이 순례를 마치고 엉뚱하게도 “대한민국 종교지도자 이웃종교체험 성지순례 종교계 성명서”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7대 종단의 지도자들이 의견을 모아 성명을 발표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그 공동성명의 내용 중에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내용 있어 용기를 내어 감히 대한민국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딴지를 걸기로 했다.
공동성명서는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인종, 문화, 종교 그 밖에 그 어떤 분야에서도 차별 또는 혐오로 인한 사회적인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증오(혐오)범죄법 등의 입법적 조치가 진행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문장까지는 나름 차별을 반대하는 인권친화적인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7대 종단이라는 까다롭고 다양한 입장이 이와 같이 조화로운 문장으로 표현 될 수 있음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주 심각한 문제는 바로 그 다음 문장이다.
“그러나 사회적 소수자 인권보호를 빌미로 ‘동성애차별금지법’과 같이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사상적 근간과 사회적 통념을 무너뜨리는 입법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한다”는 황당무계한 문장을 읽고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직전 문장에서 “어떤 분야”에서도 차별이나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으면서 바로 다음 문장을 통해 그 “어떤 분야”에 ‘동성애차별’은 해당사항이 아님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모순되고 부끄러운 입장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동성애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근거가 참으로 놀랍다. 동성애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사상적 근간과 사회적 통념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며느리가 남자라니 말도 안 된다”라거나 “내 아들 군대가서 동성애자되고 AIDS 환자 되면 SBS가 책임져라”라는 등의 유치한 구호는 신문광고를 통해서도 접해 본 적이 있었지만 ‘전통’이라는 개념을 불러와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이다.
전통이 모두 좋은 것이고 그대로 그 유지를 받들어야 하는 것이라면, 십 수명의 후궁을 두었던 역대 왕조 임금님들의 호사스런 전통이나, 양반과 천민으로 나뉘어 평생 그 출신에 따라 누구는 대대로 놀고 먹으며 발에 흙 한번 묻히지 않고 살고, 누구는 노비가 되어 그 자식들에게까지 그 처참한 미래를 물려주어야 했던 잔혹한 전통 역시 보존해야한다는 말인가?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 “천한 것들하고는 밥도 같이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바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전통적인 사상적 근거’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이다.
2005년 발표에 의하면 당시,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인 24,970,766 명이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그 종교들이 모두 7대 종단에 포함되니 이번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공동성명은 대한민국 국민 절반을‘지도’한다는 사람들이 발표한 공동성명이 된다. 그러한 공동성명에서 대놓고 동성애자들은 차별해도 좋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으니 이제 이 나라의 동성애자들은 정말 큰일이 나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이제 그들의 ‘지도자’들의 말대로 대놓고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기 시작한다면 어찌 이 땅에서 살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인권운동진영의 오랜 숙원 과제인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자는 것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법무부는 이중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 7개의 영역을 뺀 채 정부입법을 추진하여 인권운동진영과 대립한 적이 있다. 그때에도 일부 기독교 진영을 중심으로 ‘성적지향’이라는 부분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압력이 있었고 결국 법무부는 비겁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전세계에서 혁명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미 지난 2009년 2월 아이슬란드에서는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가 총리가 되었고, 올해 6월에는 자신의 오랜 애인과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독일 외무부장관이며 자민당 당수인 귀도 베스터벨레(48) 역시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혔고 언제나 자신의 동성애인과 함께 하다가 얼마 전 결혼했다. 또, 유럽국가 중 보수적인 가톨릭신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도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니치 벤돌라(52) 푸글리아 주지사가 ‘이탈리아의 오바마’라는 칭호를 받으며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고 있고, 파리와 베를린에서도 동성애자가 시장에 당선되었으며, 노르웨이 재무장관도 동성애자 애인과 결혼했다.
당연히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합법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마땅치는 않지만, 네델란드, 벨기에, 독일, 덴마크, 포르투갈, 헝거리, 프랑스, 노르웨이, 러시아, 아일랜드, 스웨덴, 핀란드,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들이 이미 법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지위를 보장하는 ‘합법화’과정을 거쳤다. 미국에서도 동성애를 합법화한 주들이 늘어나고 있고, 최초의 레즈비언 연방 검사까지 탄생했다. 또,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 군대내의 동성애 허용 등을 주장하며 동성애 합법화가 대세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왜 한국만 이렇게 국제사적인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까? 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렇게 동성애자들을 내쫓지 못해서 안달인가 말이다.
게다가 이번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북한인권에 관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입장 역시 매우 우려스럽다. 공동성명은 “정부가 북한인권 회복을 위해 나서고 구체적인 북녘 동포의 인권회복 활동을 하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정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3년여에 걸쳐 지속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압박하고 흔들어 왔던 논리가 아닌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북한위원회’로 만들어 가며 북한주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대북 방송을 재개하고 ‘삐라’를 뿌리라는 권고를 결정한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 아닌가? 인권운동진영과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게 느닷없이 종교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힘을 실어준 셈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시절 전면휴업까지 불사하며 종교계가 앞장섰던 ‘사학법 개정 반대 입장’을 또 들고 나오며 사학법 폐지를 요구했다. 정권이 바뀌니 다시,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었던 사립학교들을 아무 간섭도 없이 독차지 하고 싶나 보다. 물론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라거나, 민간의 남북교류를 보장하고 자비와 사랑의 대화로 인류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듣기 좋은 소리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번 공동성명의 핵심은 동성애 반대, 북한인권활동, 사학법폐지 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에게 위안과 평화를 주어야 하는 종교가 요즈음 한국 땅에서는 오히려 국민의 근심거리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종교로 인한 분쟁이 수 없이 많았지만 총칼을 든 전쟁도 아니면서 이렇게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종교는 한국의 종교가 기념비적이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대표들은 단순한 그저 한 사람의 종교인이 아니다. 자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각 종단의 공식적인 대표들이며 그들의 말은 곧 각 종단의 입장이 되고 만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차별을 조장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흔들 수 있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할 때, 종교는 더 이상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종교가 나서서 정치적 입장을 밝혀야 할 때는, 부당한 권력이 자신들이 가진 공권력과 힘으로 국민을 억압하려고 할 때, 국민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부당한 권력을 상대하기 힘들 때, 그럴 때 종교가 국가에 제동을 걸고 국민들을 보호해야 할 때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오천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유유히 흘러온 아름다운 강들을 파괴하고 뭇 생명들을 위협할 때, 사회적 약자인 철거민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권력의 몽둥이에, 방패에 두들겨 맞고 거리로 쫓겨날 때 말이다.
한국 국민들은 왜 존경받는 종교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가? 국민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용기 있는 종교인, 햇살처럼 따뜻한 손길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종교인. 이제 우리 국민도 국민의 편에 서 기도하는 ‘종교지도자’서너명 쯤은 가질 때도 되지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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